보천교에 대한 역사인식 재고하자

[5분 자유발언] 정읍시의회 황혜숙 의원
[5분 자유발언] 정읍시의회 황혜숙 의원

존경하는 정읍 시민 여러분! 유진섭 시장님을 비롯한 공직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입암, 소성, 연지, 농소가 지역구인 정읍시의회 황혜숙 의원입니다.

먼저, 본 의원에게 5분 발언의 기회를 주신 조상중 의장님을 비롯한 선·후배·동료 의원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정읍 보천교에 많은 빚을 졌다’ 1945년 상해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은 귀국하자마자 다른 곳이 아닌 정읍을 찾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한, 1946년 이승만 대통령이 전북 정읍을 방문하여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고 많은 지역 중에 정읍이었을까요?

당시 정읍에는 보천교라는 종교가 있었습니다. 동학운동 접주 자치구의 아들인 월곡 차경석이 600만 신도를 거느리며 위세를 떨쳤다고 합니다.

보천교는 일제강점기에도 광화문을 그대로 본떠 본거지인 정읍 대흥리에 도시를 계획했습니다.

자급자족을 위해 상공업에 힘쓰는 등 나라 잃은 민족은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엄청난 교세를 통해 모은 금전으로 차경석은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보천교는 비폭력주의를 내세웠고 이로 인해 친일집단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는 보천교가 극도의 보안 속에 임시정부에 돈을 전달한 탓에 기록 대신 증언만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친일집단이 아니라는 것은 일제가 보천교에 행한 행위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일본은 교세가 커지는 보천교를 경계·탄압하기 위해 ‘보천교 신법’을 만들어 보천교인들을 검거하는 대대적인 작업을 벌였고 이에 견디지 못한 차경석은 별세하고 일제는 교단 해산령을 내려 보천교 본부 건물을 해체시켜버렸습니다.

하지만 보천교가 항일운동의 핵심적 자금원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독립지사 김홍규는 보천교 재정간부였는데 1930년대 이후 신사참배 압력에 굴복한 기성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보천교 간부 중에는 변절자가 한 명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거대한 보천교 본부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파괴됐다는 사실은 곧 일제와 보천교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보천교는 친일종교가 아니며, 오히려 일제의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말살하려 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정책의 피해자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정읍을 근거지로 삼았던 보천교에 대해 역사 인식을 재고해야 합니다.

이에 상해임정이 해방될 때까지 26년 4개월간 외교활동과 일제 암살·파괴활동, 광복군 조직 등 국내외 항일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음지에서 인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민족종교인 보천교와 관련한 홍보관 건립을 주장하며, 또한 독립운동을 한 보천교인들에 대한 의료비 지원 대책 강구와 일제에 항거하다 돌아가신 보천교인들에 대한 위령비를 세우는 등 우리 지역에서부터라도 보천교를 다시 재조명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어떻게 보면 우리 대한민국을 있게 한 독립유공자인 보천교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는지요.

이상 일제에 저항하다 사라져간 보천교인의 순국선열들에 대한 고귀한 희생과 헌신에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5분 자유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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